악마 쌤의 교육 비결? ‘치맛바람 사절’서 시작합니다
김대진 한예종 신임 총장 인터뷰
손열음·김선욱·문지영 등 길러낸
‘콩쿠르 제조기’ ‘피아노 명조련사’
“한국 연주자는 테크닉만 좋다?
젊은 세대가 뛰어넘어야 할 장벽”
사상 첫 직선제 투표로 총장 올라
“외국서 유학 오는 명문 만들 것”
‘악마 쌤(선생님)’이 총장님이 됐다. 지난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에 취임한 김대진(59) 교수는 피아니스트 손열음(반 클라이번·차이콥스키 콩쿠르 2위), 김선욱(리즈 콩쿠르 1위), 문지영(부조니 콩쿠르 1위) 등을 길러낸 스승이다. 지난 3일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박재홍(22) 역시 ‘김대진 사단’의 막내다.
‘콩쿠르 제조기’ ‘피아노의 명조련사’까지 김 총장의 별명도 다양하다. 그중에서 유명한 건 ‘악마 쌤’. 제자 김선욱이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스승의 전화번호를 ‘악마 쌤’이라고 저장한 사연에서 비롯했다. 29일 서울 석관동 한예종 총장실에서 열린 김 총장과의 인터뷰도 ‘레슨 비법’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총장 취임 이후 첫 언론 인터뷰다.
피아니스트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은 서울대 음대 81학번. 소프라노 조수미와 작곡가 진은숙이 그의 동기다. 김 총장은 “학창 시절 조수미가 레슨을 받을 때 피아노 반주를 맡았고, 진은숙의 스승인 작곡가 강석희 선생님의 현대곡을 연주하기도 했다”면서 “세계 무대에서 동기들이 활약하는 모습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장련성 기자
김 총장은 ‘치맛바람’ 사절이 첫째 원칙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학부모에게 연락하는 건 상관없지만, 학부모가 먼저 연락해오는 건 싫다”면서 “부모가 일일이 간섭하고 잔소리하면 아이들의 자율성과 예술적 자아는 그만큼 줄어들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그의 레슨은 메이저리그의 ‘자율형’보다는 한국식의 ‘관리형’에 가깝다. 다만 타고난 장점은 건드리지 않는 대신, 단점을 직시하고 보완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스승의 연주 스타일을 강요하지는 않지만, 레슨은 무조건 녹음하고 주요 대목은 제자와 함께 들어본다. 그는 “속도계가 없으면 운전자가 과속하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겠는가”라며 “자신의 연주를 반복 청취하는 과정을 통해서 잘못된 습관을 고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야단과 잔소리는 한꺼번에 몰아서 한다.
그는 한예종 역사상 처음으로 교직원과 학생의 직선제 투표를 거쳐서 총장에 선출됐다. 식당·청소 담당 직원과 조교들도 투표에 참여했다. 김 총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포부는 “외국에 유학 갈 필요가 없는 학교를 넘어서 외국에서 유학을 오는 예술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는 “유학 가지 않고도 얼마든지 세계적 콩쿠르에서 입상할 수 있다는 개교 목표는 지난해 세상을 떠나신 초대 총장 이강숙 선생님께서 만드신 것”이라며 “최근 한예종 출신들의 눈부신 약진을 통해서 그 목표는 어느 정도 이뤘다고 본다”고 말했다. ‘전설의 2010학번’으로 불리는 김고은·박소담·안은진 같은 연기자들이나 넷플릭스를 통해 화제를 모은 박인제(’킹덤2′), 이경미(‘보건교사 안은영’) 같은 연출가들이 모두 한예종 출신이다.
김대진 총장의 ‘레슨 5계명’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외국에서 찾아오는 세계적 예술 명문 학교를 만들자는 것이 김 총장의 구상이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출연한 인도 출신 배우 아누팜 트리파티(34)도 한예종 출신이다. 김 총장은 “지금도 102명의 외국인 유학생이 한예종에서 공부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국내외 학교 교류를 통해서 유학생을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인들은 노래하지 않는다. 유전자에 없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처럼 아시아 음악인들에 대한 편견도 만만치 않다. 김 총장은 “우리 세대가 유학했던 30~40년 전에는 아시아 연주자가 워낙 드물었기 때문에 그런 텃세도 적었다”면서 “한국 등 아시아 음악가들의 급부상에 따른 ‘역(逆)질투’이자 ‘역(逆)시샘’인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시아 연주자들의 테크닉은 뛰어나지만 감정 표현에는 상대적으로 서툴다’는 인식 역시 문화적·언어적 이질감 때문에 생겨난 결과물”이라며 “우리 세대가 극복하지 못했던 편견의 장벽을 젊은 세대가 뛰어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재 한예종의 음악원·무용원은 서초동 예술의전당에, 연극원·영상원·미술원·전통예술원은 석관동에서 ‘한 가족 두 살림’을 하고 있다. 거기에 어린 예술 영재를 가르치는 한예종 산하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은 서울 종로구에 떨어져 있다. 김 총장은 “코로나 시대에 비대면 수업을 통해서 보완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통합 부지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전 부지 등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학내 의견 수렴을 거쳐서 장기적으로는 통합 캠퍼스로 이전하겠다는 계획이다.